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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오만, 편견의 시대에 요구되는 음악적 기여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john12.24

           

고교2년, 교실에서는 담임선생님의 지도하에 개인적인 얘기를 가감 없이 나누는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한 학생의 눈물겨운? 얘기를 듣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오늘이 자신의 생일임에도 어머님께서 딱히 거창한? 이벤트를 해주지 않아서 몹시 속상했다고 하며 눈물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이곳이 유치원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고교생의 생각과 얘기가 이정도라니 좀 어이가 없고 그에게서 사탕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의기양양한 모습의 꼬마가 그 사탕을 길바닦에 떨어트려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엿보는 듯 합니다....

이처럼 자기것의 집착은 모두의 공통점일뿐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란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나눔>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전제하에 글을 이어가고자 하며 사회 각 분야에 걸친 모든 활동은 사회참여와 기여라는 숭고한 도의적 책임이 있는데 여기에 음악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남다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삶의 고단함이 가중되는 이유도 <더불어 사는 이해>의 결핍이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가져다 주는 혜택의 수혜자로 여길 뿐 스스로 기부자가 되야한다라는 생각에는 인색함을 보입니다

마치 생각은 위대한 철인이요 사회적 요구와 비판은 떠들썩한 정치가도 부럽지 않지만 정작 실상은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유익에 급급한 어이 없는 고교생과 달콤한 사탕에 목메이는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같이 치열한 삶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본능에 메이지 않고 공동체 의식에 충실한 이웃 섬김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보다 더 세상을 부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여기에 공감하여 여러 방식으로 이웃을 돌보는 많은 음악인들을 볼 수 있는데
가수 데뷔 50년차를 맞이 한 패티김이 경기문화회관에서 갖은 공연의 수익 전액을 독거노인에게 기부한 사례도 있으며 여지껏 100억여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회에 기부한 김장훈은 기부문화의 앞잡이?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김창완 밴드를 포함한 여러 음악인들이 자선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 소록도에서 어려운 환우를 상대로 하는 조용필의 나눔 콘서트...그리고 "사랑의 열매"에서 주관하는 "사랑나눔 음악회"에 동참하는 많은 음악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재능기부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각계 어려운 계층에 다가서려는 훈훈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하지만 사회전반을 들여다 볼 때 이러한 그동안의 나눔은 미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고 무엇보다 대다수 음악인 스스로의 삶도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느 가수는 정상에서 인기를 구가하다가 대중으로부터 혹은 가정에서 마저도 외면 당하는 경우도 있고 그외 정상급 가수는 매번 반복되는 불안한 생활패턴에 이은 극심한 빈곤을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가수들의 도박, 마약에 관한 일탈의 소식은 사회의 기여는 고사하고 본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음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실천하기란 여간 수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관한 음악의 지대한 영향력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제 갓 20세 안팍의  어린 IDOL(우상)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대중음악의 현주소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으로 한편의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달콤한 멜로디에 따르는 일시적 반응이 전부가 아닌 사회 전반에 깊은 상관 관계가 있으며 때문에 정치,시사에 관계된 사회문제의 이해도 필요로 합니다.......


한번은 공원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들이 아주 우아하게 날개짓하며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잇감을 찾아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장면을 목격 할 수 있었는데 평화의 상징인 고녀석들은 예의 바르게? 서로를 배려하며 먹이를 나눌거라는 예상과 달리 하나의 먹이를 차지하려 서로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무너지게 되었고 한편 정글과 같은 비열한 세상의 일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되는 개혁주의에 반하여 등장한 사회적 연대책임이 과거 봉건사회의 어두운 흔적이이서
지금 이러한 연대책임을 강조할 수 없지만 공익을 위해 무언가 절충된 제도의 필요성은 지울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어르신들은 공공의 국익을 갖고서 사유화? 하려는 꼼수를 부리기에 여념이 없으며
틈만나면 대기업 총수들은 공금횡령에 갖은 못된 짓으로 언론의 사회 일면을 장식하기도 하며 이따금 자기들의 체육시설을 세움으로 지역사회의 발전과 공공복지에 기여하는 이미지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른이 젊은이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커녕, 저들의 눈치를 보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강자의 무례함은 언제까지나 약자가 감수해야 할 운명처럼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며
약자의 울부짖음은 버릇 없는 녀석의 4가지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악을 비롯 사회 전반에 걸친 각 분야의 공동체 의식과 나눔의 문화는 소수 맘착한 사람들의 설레발이 아닌 모두가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근래  양육하던 어린 딸에게 천원짜리 과자 한봉지를 안기고 행방을 감춘 무정한 아버지가 검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눈물 짓는 그를 향해 양심 없는 무뇌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것이 엄연한 우리의 이웃이자 현실입니다.



자녀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그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 항상 극약을 곁에 준비한다는 노인들의 착함? 또한 우리들의 아픔이며 그분들에게 아무런 마음조차 열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무정한 현대인들은 분주함을 핑계삼기에 급급합니다.

많은 노인들은 삶을 비관하여 또 그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며
가장들은 보이지 않는 탈출구를 좇아 매일 같이 허우적거리고
여기에 보다 못한 주부들은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여
결국 이로 인해 방황의 늪으로 치닫는 우리 아이들은 불가피한 희생자로 살아갑니다.

<공동체 의식>에 기인한 <나눔>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재산을 공동체에 의탁하여 공동 분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거칠고 때묻은 노숙인의 손을 한번 잡아 줄 수 있는 따뜻함이며
작은 것을 나누는것 이전에 그것을 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과 의지일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에선가 자신도 모르는 하나의 열매가 되고 결국 이러한 결실의 연속은 무성한 푸르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john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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