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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상처만 남긴 위안부 화보집, 알리의 "나영이" (듣기)



 














나영이 - Ali

하늘에서 내려온 빛과 바람소리
낙엽을 태우네 눈보라를 태우네

땅 끝에서 퍼지는 깊은 바다소리
태양을 비추네 하늘을 비추네

살아 숨쉬는 것 조차 힘에 겨워 이렇게 해가 저물길 기다리네
이제 도망가지 않아 마주서서 이렇게 달이 떠오르길 기다리네

어린 여자아이의 젖은 눈 사이로 흘러나오는 회색빛깔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버린 불쌍한 너의 인생아

어지러운 세상 그 속에서 따뜻한 찬란한 그 사랑을 바랄 때
Can you feel 느낄 수 있을까
더럽혀진 마음 그 안에서 진실한 순결한 그 사랑을 원할 때
Can you do that 지킬 수 있을까

이리저리 둘러봐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 이리저리 둘러봐도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대도 시간이 우릴 버리고 간대도
Trust your mind. Trust your mind.

가사 출처 : Daum뮤직

요즈음 가요계에는 때아닌 바람 잘날 없는 시기를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나가수에 합류한 적우는 경연 전부터 자격논란의 휩싸이더니 경연을 거듭할수록 그의 논란은 이제 사단으로 커져만간 느낌이며 이를 진화하는데 제작팀의 고충은 이만저만 아니라는 생각합니다.

이처럼 어수선한 하루하루가 흘러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다름 아닌 불후의 명곡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알리"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제2의 위안부 화보집 된 알리의 "나영이"

알리는 200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도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을 잊지 못해 이 내용이 포함된 자작곡 "나영이"를 그의 음반에 실었습니다. 여기까지 알리의 순수한 의도로 인한 작업이었기에 별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심혈을 기울여 야심차게 준비한 자작곡 가사내용은 그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렀습니다. 이를 접한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넘어선 심각한 불쾌감을 느꼈고 이후로 삽시간에 거센 항의로 이어졌습니다. 이로써 알리는 하루도 채 못되어 곡"나영이"가 삽입 된 1집 음반 전량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대중음악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기에 이번 일은 여러 측면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선 문제의 발단이 된 곡 "나영이"의 배경이 되는 조도순 사건을 간략히 논하자면 ...조도순을 등교하는 나영이를 유인하여 화장실 안에서 몹쓸짓을 벌이고 과정에서 나영이는 심한 구타에 이어 장을 신체 밖으로 쏟아내기에 이릅니다.....
모두가 왠만큼 아는 사실로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지며 이후로 수사과정의 미흡함으로 4차례에 걸쳐 어리석은 수사가 반복되었으며 "나영"이란 이름이 가명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개명을 요구하는 사회적 기이 현상도 벌어지게 됩니다. 끔찍한 사건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가운데 나영의 아버지는 이 사건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나영이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서 언론으로부터의 관심을 경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강력, 흉악사건이 뉴스 일면을 장식하는 요즈음, 알리를 통해 한동안 잊혀질만 했던  나영이의 사건이 다시금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누구의 위로가 도움이 될런지 혹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켜려는 의도에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리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그가 표현 했던 가사의 내용은 수많은 대중을 분노케 만들었고 결국 나영이를 욕먹이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순수한 의도에서 그것도 거짓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시작 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은 이번 사건은 예전에 일본군 위안부 화보집으로 한동안 큰 물의를 일으킨 이승연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알리가 나영이의 슬픔을 안타까워하며 자작곡 "나영이"를 준비했다고 하면 이승연 또한 위안부 할머니의 평생 풀지 못한 한을 알리고자 위안부 화보집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처음 가졌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 음반은 전량 폐기처분, 화보집 필름은 소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갖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결과적으로 그들이 순수한 의도에서 작업을 수행했다손 치더라도 상업적인 비즈니스와 결탁이 되었고 문제의 심각성으로 인한 사회적 관심은 고스란히 그들이 계획했던 비즈니스에 연결됐다라는 점입니다. 끝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공감과 동의를 얻어냈어더라면 이들의 민감한? 사업은 예술로 승화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음반과 화보집으로 간단히 접근하고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처절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이번 일본 대사관 앞에서 천번째 갖는 위안부 할머니의 시위를 보면서 양심을 찾아 볼 수 없는 일본 정부와 관망하는 우리 정부, 그리고 이를 관행적인 불쌍한 할머니들의 시위로 치부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로써 음반과 영상, 문화에 관여한 모든 행위가 예민한 사회문제와 깊숙히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복잡하다는 이유만으로 스멀스멀 피해만 갈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모든 예술행위가 "사실"을 기초로 이뤄졌어도 그 방법과 과정에서 큰 오류를 범한데 있습니다.

간디는 금요일은 금식일로, 월요일은 침묵하는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맹세를 하거나 공약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선 침묵하는 훈련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 그리고 실수를 덜 하는 사람은 모두 말에 신중을 기했듯이 굳이 한 마디로 족하는 상황에서 두 마디의 언급을 자제하기를 지적했던 간디에게서 사람은 누구나 생각했던 자신의 모든 생각이 옳다라는 편협에서 자신을 돌이키라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어찌보면 식물들은 서로를 물어뜯지 않고 서로 말이 없어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때에 따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음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런지 싶습니다.

어느 노인에 관한 일화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느날 뜻하지 않던 암선고를 받게 되었고 이후로 성격이 난폭해지더니 가족에게도 폭언을 쏟아내며 주위 사람과의 만남도 회피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노인과 가깝게 지내던 꼬마가 노인이 묵고 있던 병실에서 2~30분의 둘만의 시간을 갖었는데 그 이후로 몰라보게 안정을 취한 노인을 보고 가족들은 꼬마에게 그 원인을 물어보니 꼬마는 할아버지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안고 울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 지적할 사람들로 넘쳐남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늘 정의롭고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처벌 받아야 할 가해자가 아니란 확신과 소신은 여간 고치기 힘든 고질병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각기 다툼의 원인과 근거는 나름데로의 사실에 바탕을 두지만 결국 서로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영역임을 쉽게 확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이상의 음반과 영상의 문제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 입장에서 모든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려는데 분쟁이 시작됨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관계로 모두가 문제 해결에 관해 그리고 상처의 치유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도 잘 수행되질 않는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상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노래 가삿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하게 살아가지만 반면 중차대한 영향력을 지닌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많은 이들은 대중의 기본 심리를 헤아리지도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나영이를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픔은 고스란히 어떠한 치유의 손길도 제대로 닿지 않은 채 방치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기 주관적이고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사실만을 근거로 상대를 대한다라면 아무런 해답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말없이 할아버지를 손 잡고 하염 없이 울어 주던 꼬마의 따뜻한 안아줌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