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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나가수의 섭섭함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관한 얘기입니다.
한 소년과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어린 소년은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도 자기도 하고 심심할 때면 나무에 줄을 메달아서 그네를 타기도 합니다.
여기에 나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껍질이 벗겨지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갸녀린 가지를 소년에게 내어 줍니다.
시간이 지나고 소년은 나무에 주렁주렁 맺힌 열매를 따다가 장에 가서 내다 팝니다. 이때도 나무는 아무런 말 없이 소년에게 기꺼이 탐스런 열매를 아무런 조건 없이 미련 없이 내어줍니다.


이후로 소년은 장년이 되어 배를 만들기 위해 그 나무에게 톱을 들이대는데 이때도 예전처럼 그 나무는 아무런 대꾸없이 자신의 몸통을 내어줍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 소년은 노인이 되어 밑동만 남은 그 나무를 찾아가지만 볼품 없는 나무는 화색을 머금고 고단한 노인을 위해 노인의 의자로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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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찮게 <나가수>에 대한 회의적인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기사 이전에 필자 스스로 느끼는 부분도 있고 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면밀히
그동안의 나가수를 들여다 보면 이러한 불평마저도 배부른 아이의 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어쩌면 나가수가 근본적으로 형편 없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기에 거는 기대감이 도를 지나쳐 나가수를 폄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가수를 겨냥해서 [k팝 스타]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불후의 명곡2] 역시 나가수의 적잖은 영향을 입었고 그들이 보여준 중견가수에 대한 탁월한 섭외력은 나가수에 있어서 겉으로 표현하기 힘든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가수가 지난해 대중가요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로 인해 파생된 다방면의 부흥은 오히려 나가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소위 주류와 비주류, 전통과 아류의 입장에서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양상을 보이며 나가수는 심지어 시청률면에서 경쟁 프로그램에 조금씩 뒤쳐지고 내용면에서 화끈한 가십거리가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무런 꺼리낌 없이 이러한 평가와 비판에 익숙하지만 과연 그동안 나가수가 쌓아 놓은 업적에 비하여 지금 이러한 푸대접?이 과연 정당한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나가수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으로 원년 가수에 비해 네임벨류(아우라)가 크게
뒤진다
견해입니다.
예전에 김영희 피디가 간식 봉투를 들고서 새벽에 가수의 연습실에 찾아 갔던 것처럼  이러한 노력과 의지가 있으면 지금도 꾸준히 내노라하는 인지도 있는 가수를 섭외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식의 질문도 가능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것이 나가수를 잘못 이해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선입견의 요인라 할 수 있습니다.


김영희 피디는 소위 m사에서 전설?로 불리울 만큼 풍부한 경험과 인맥을 유지했던 사람으로 그가 초기 불미스런 사건으로 자리를 비운 마당에 섭외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을 우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김피디가 프로그램을 준비하기까지 오랜 시간 준비하면서 이뤄 놓은 결과물이고 또 처음였기에 상당히 인지도있던 가수로 구성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보다 초창기에 획기적인 아이템을 갖고서 최고의 가수를 포진하기 수월했고 반대로 섭외에 절대적으로 관여하는 피디의 역량과 그외 여러가지 정황(한계)에서 지금이 섭외에 있어서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추이는 당연한 결과이며 어느 정도 예상 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취향은 이러한 변화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변덕?스러운 개성을 당연한 잣대로 간주하며 들이대는 듯 합니다.

어쩌면 모순이 외부가 아닌 나가수 내부에 어느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최고의 공연(경연)을 펼친다는 전제가 사실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정의는 결코 틀린게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경연에서 탈락자가 발생할때마다 [최고]의 가수가 투입된다면 그렇게 [최고]가 흔하게 준비되었다면 그는 최고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최고라는 것은 함부로 남용하는 그러한 성질이 아닌데 분명 이러한 용어를 함부로 써가며 기대감을 조장한 것 또한 [나가수의 제작진]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물론 최고의 가수를 포함한 다방면의 폭넓은 가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전제도 있었지만 처음 나가수가 표면적으로 강조했던 최고라는 가수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크게 부각되었고 이로써 나가수가 남달리 주목받기도 했었고 반면 대중의 커다란 실망감의 주요인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단순한 언어적 차이가 가져다 주는 결과가 이렇게 심각하게 참담?하게 나타날 줄은 아마 나가수 제작진도 미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초창기 몇달간은 모든 음원과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었고 그외 여기에 필적할 만한 경쟁의 대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청률면에서 이들을 뛰어 넘는 다수의 프로그램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나가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는 나가수의 시청률과 한번 식어진 기대치는 여간 단순한 일이 아닌가 봅니다.


여기에 대해 두가지 견해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특히 섭외의 문제에서 제작진의 무능력?만을 탓할것인가? 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결코>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k팝 스타는 최고의 기획사와 성공이 보장된 최고의 부상이 준비되어 있고 여기에 물을 만난 듯 몰려든 수많은 끼와 재능을 갖춘 어린 지원자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성공과 최고와 최상의 조합으로 구성된 k팝 스타와 나가수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단지 이것은 남들이 쉽게 단정짓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의 문제입니다.

화려한 멘트, 고급스런 분위기, 최고의 재력을 지닌 지원사격에 힘입은 어린 지원자들의 눈부신 재능이 모든 면에서 나가수를 압도하고 여기에 나가수가 꼬리를 내려야 하는 그러한 초라한 신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가수는 분명 , 좋은 가수들의 경합장이긴 하지만 당대 최고라는 조건은 애시당초 그릇된 발상이라는 전제하에 분명 훌륭한 경연의 무대이고 특별한 교훈을 매번 남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가수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고 봅니다.
즉, 나가수는 조용필, 이선희, 하춘화, 심수봉, 전영록, 인순이, 윤도현, 태진아, 장윤정, 패티김등 당대, 역대 최고의 가수가 나와야 하는 경연장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러한 시각과 선입견에는 툭 내 뱉고 자리를 비운 김영희 피디도 상관 있어보이고 무엇보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mbc 나가수 제작진의 부족한 민첩함도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m사가 k사를 따라잡으려 해도 여전히 그들의 주변을 배회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찰잘한 미세한 문제의 대처 능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덥석 k팝스타에게 발목을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가수를 겨냥하고 작심하고 달려 든 k팝스타와 간간히 나가수의 섭외대상을 곳감 빼먹듯 가로채가는 불후의 명곡 또한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가수를 견제하는 프로그램의 약진 때문에 혹은 나가수 내부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오해의 소지 때문에 나가수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평가절하 되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라고 봅니다.

나가수는 최고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어떤 기획상품?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나가수의 해명과 수정이 필요한 대목)
나가수에 참여하는 가수는 때로는 최고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들의 이모와도 같은 어머니와도 같은 약간은 거칠은 약간은 때묻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명예도 예전의 영광도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상처도 숨기 없이 드러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 진정한 <나가수>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서론에서 얘기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를 나가수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나가수를 위협하는 경쟁 프로그램도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은 나가수의 토양에 어느 정도 영향을 입었습니다.
노상에서 시금치를 팔던 할머니의 손이 아무리 거칠고 보잘것 없어도
논밭에서 쟁기질하는 노인네의 온몸이 까칠하기 그지 없어도 그 분들의 수고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것처럼...

현재 나가수가 보여주는 모습이 때론 기대했던 이하의 투박함과 촌스러움이 뭍어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 실제의 모습이며 우리는 여기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하며 그들의 몸부림, 그들의 울림에 나오는 인생의 깊이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평등을 외치고 주장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최고와 최상을 동경하며 추앙하는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기준 속에서

보편적 우리 주변의 일상(나가수)을 식상이라고 치부하며 거부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때문에 나가수에 관한 섭섭함은 가수의 네임벨류에서 오는 문제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과 허영심, 경연을 바라보는 관점(자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