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칼럼

CCM의 거장, "달린 첵"을 아십니까?



















로마에 의해 예수가 죽임 당한후 이스라엘의 초창기 초대교회는 가정교회 형식을 띌 무렵...
어느 유대인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를 믿음) 지인의 소개로 초대교회, 가정교회에 초대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정성으로 준비한 가득한 음식이 있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그곳을 방문한 유대인을 친절하게 맞이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떡을 떼며 그동안의 삶을 나누고 서로 힘써 기도해주며 은혜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 한참 흐를 무렵...처음 그곳을 방문한 유대인은 그곳으로 인도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 그런데 예배는 언제 시작하지요?"
그에게 돌아 온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네... 이제 예배는 모두 끝났습니다"    [고문서의 번역본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로마에서 AD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AD 392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국교화 되면서 예전의 초대교회 형식을 벗어나 조금더 제도적 종교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지만 이면에 점차 외형적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한국 신학의 모체가 되는 미국에서는 전통적 예배형식을 추구하는 교회는 성도가 크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반면 예배의 정형화 된 형식에 크게 구애 받지 않은 열린 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의 형식의 좋고 나쁨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서 경험하는 감동과 가치의 중요성이 내용의 관건일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신자에게 영감을 주고 공감을 이끄는 열린예배에는 교회음악, CCM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특히 미국에서 CCM 음반은 빌보드 차트에서 상위에 랭크 되기도 하며 최고의 기량을 갖춘 뮤지션들을 보게 되는데 한 예로 아브라함 라보리엘은 어떤 평가나 비교도 어려운 독보적인 베이시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세계 3대 CCM단체로 호산나, 마라나타, 빈야드 뮤직이 있었는데 요즘에 호주의 힐송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시드니의 힐송처치를 모체로 하는 힐송뮤직은 대표적인 여성 예배인도자로 달린첵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적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로 15세가 되던 해, 많은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소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로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교회내 평범한 찬양대원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간혹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방송국에서 CM송 제작에도 관여했지만 결혼 이후로 뜻밖의 경제적 어려움과 심한 역경에 봉착하며 자신이 원래 바랬던 삶과 동떨어진 현실을 보며 몹시 힘겨워 할 때 그는 < Shout to the Lord>를 작곡하게 되었고 이는 급기야 자신의 교회를 거처 이웃 교회, 그리고 전세계에 걸쳐 두루 불려지는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이곡은 ccm 차트 리스트에서 30연속 1위를 지키기도 했으며  29회 도브 어워드상(29th Annual Dove Awards) 수상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 찬양으로 뛰어난 여성 찬양 리더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 시리즈를 내어,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Shout to the Lord 뿐만 아니라 7개의 앨범을 힐송 레코드사에서 내었고  런던 크리스챤 미디어 센터인 LCMC가 제작에 참여한 독립 프로젝트「I Believe The Promise」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세련되고 감미로운 그러면서도 파워풀한 영성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음악은 어릴적 적잖은 영향을 입은 빈야드음악과 밀접한 상관이 있어 보입니다. 그녀가 리드하는 Hills Worship Band와 Choir는 세계최고 수준이며  Hills의 교육과 훈련은 엄격하기로 정평이 났는데 음악적 자질과 훈련은 기본이며 깊은 영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며 뜻하지 않게 맞이한 삶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경을 털어버리고 일어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큰 영향력을 끼치는 예배인도자로 빼어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ccm이 아닌 일반 대중음악을 다루는 가수와 공통점을 그리고 이면에 다른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가수에는 주로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서 그나마 수월한 과정을 밟고 일어서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달린첵처럼 어떤한 환경적 장점을 부여 받지 못한 채 인생의 절망에서 기적적으로 일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으로
맹목적 성공을향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반적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반면 대중을 위해서 자신의 삶(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그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특정 종교를 차치하더라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헌신하는 뮤지션의 각오는 분명히 존중되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달린첵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며 활동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남달리 겪었던 힘들고 어려웠던 삶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순간에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좌절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에 넘어지지 않고 이겨냄으로 이러한 인내가 음악으로 표출되는 에너지의 근원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굽히지 않은 그녀의 열정은 어느 순간 찾아 온 기회를 살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결코 성공은 고사하고 내일을 장담 할 수 없는 달린첵이 거둔 놀라운 업적과 행보는 많은 이들의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주변의 많은 음악인들은 작은 것을 확대해석하고 / 오직 성공을 위하여 맹목적으로 매진하고/
무엇보다 내면의 아름답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보다는 지극히 기획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정형화된 상품의 이미지 남겨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스타>들은 스스로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무대 위의 근사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볼성 사나운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내면의 깊이와 인격의 차이가 일탈하는 뮤지션과 달린첵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십대 중반의 나이에 놀랍도록 흠잡을데 없이 곡을 소화했어도 그가 곡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전 연령층을 상대로 인생을 논하며 선도 할 주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가수로서 성장하기에 고된 훈련을 통과했어도 그가 인격적으로 많은 사람을 보듬는 것과는 별개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상당수의 많은 음악이 유흥가의 도구로 쓰여지고 많은 음악인들이 그 요란함에 한데 어우러진 작금의 대중음악엔 분명 문제 아닌 문제, 한계 아닌 한계가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몰핀과 같은 순간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이 아닌 맹목적 금전적 성공을 부르는 음악이 아닌 자신의 모든 유익(life)마저도 포기 할 수 있는 그러한 각오의 뮤지션이 진정한 예술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지극히 평범한 소녀 달린첵이 인생의 나락에서 비상하여 세상을 향해 뻗어 감은 하나의 소설과도 같은 극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달린첵이 될 수 없으며 그만한 음악적 혹은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달란트를 가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이 알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하나의 소질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 하나가 한 사람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Philippians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