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시 잠간 작은 차를 갖고서 경기권 일대에 물건을 배송하는 퀵서비스를 했었습니다.
차고지는 강남고속터미널 맞은 편, 지금으로 말하자면 신반포 경남아파트 입구 근처가 되겠죠. 사장님이 주로 계신 곳은 양재동 일동제약 사거리 부근인데 저는 보통 고속터미널에서 대기하다가 간간히 연락을 받을 때면 양재로 좇아가서 물건을 받기도 했죠...
어느날 저는 연락을 받고서 잽싸게 한걸음에 양재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저에게 물건을 주실 때 왠지 모를 이상한... 평소와 같지 않은 묘한 표정을 짓더군요.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지만 퀵을 얼른 마치려는 버릇 때문에 저는 물건 (커다란 사과 박스)을 얼른 받아들고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드는 순간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게도 왠만큼 나가는 것이... 그리고 촉감도 일반적으로 딱딱하지 않고 물컹하던 것이 평소와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여하튼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 물건의 목적지인 안양을 한걸음에 달려갔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수의과학검역원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발을 디뎠던 곳이라 모든지 낮설더군요. 처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제 차는 자동 세차기와 같은 소독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윽고 소독 냄새가 진동하는 복도를 거쳐 물건을 담당자에게 건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지막 머물렀던 장소가 뭔가 특별한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더군요. 여기 저기 흩어진 싱크대와 비슷한 선반이 놓여져 있었고 바깥보다 소독냄새가 더 진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더군요.
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죠...
혹시 이곳이... 뭐하는 곳이죠?
그런데 돌아 온 대답은 너무나 쿨하고 간단했습니다.
"여기요, 동물들 해부하는 곳인데요...!!!" " 아니 물건 갖고 오신 분이 그것도 모르셨어요"
안양의 수의과학검역원
"그럼 혹시 제가 가져 온 물건 (사과 박스)도 죽은 동물이었었나요?"
돌아 온 답은 이러했다.
" 내 맞아요. 죽은 개입니다. 개가 죽었는데 그 개 주인이 그 개를 너무 아낀 나머지 그 녀석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해서 사인을 알아보려고 이곳에 해부를 의뢰했습니다."
"그럼 해부하는데 돈이 많이 들겠어요"라고 묻자 그 연구소 직원은 아마도 그 개의 분양가보다 비용이 더 들것이란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오고가는 얘기가 마치자 그동안 처음부터 사과박스를 받아 들 때 묘한 표정을 짓던 사장님의 표정이 그리고 연구소 입구 설치 된 소독기하며 복도에서부터 줄곧 진동하던 소독 냄새... 당시 주변에 널려 있던 동물 해부에 쓰이던 작업대를 보면서 내가 왜 이곳에 왔으며 내가 갖고 온 물건이 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간 소름이 돋질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손으로 묵직한 죽은 개를 안았다는데 혼란스러웠고 물컹한 그 촉감은 여전히 내 머릿 속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정신 없이 차에 돌아 온 후로 주문을 외우는 듯 차 안에 죽은 개의 안 좋은 기운이 남지 않았나 싶어 좀 전에 사과박스가 놓여졌던 자리에 시선이 자꾸 가는 것입니다.
거제도에서 중학교 2학년 시절, 교실에 쥐가 들어와서 바닥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닌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로 오른 것을 상기 해 보면 당시의 호들갑은 여전한 제 성격탓인가 봅니다.
여하튼 한참동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무관심과 부정적인 사고가 만연한 사회
죽은 개도 개지만 개 값보다 비싼 비용을 치루면서까지 개의 사인을 알고자 했던 따뜻한 마음의 주인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자존감의 상실과 존재감의 회의란 삶 속에서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고 형제가 형제를 멀리하고 상당수의 인간관계가 계산과 이해타산으로 얽혀 있음을 보게 될 때 .....
개가 죽은 이후로도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 두달 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자기야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 글쌔, 얼마전 아버님 생신도 지나 갔고... 혹시 어머님 생신이신가? 그것도 아니면 주변에 생일 맞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일이야?"
나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하자 아내는 재차 오늘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습니다.
결국 저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한참을 지나서야 그 날이 저희 결혼 기념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구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의이든 본의가 아니든 주위 많은 이웃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소중한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고 소유했던 것들을 하나 둘씩 상실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18세기 산업혁명은 혁명도 아니라고 할 말큼의 장족의 발전을 보여 주고 있는데
왠만큼 좋은 취업은 수백 수천대 일의 경쟁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는 새삼스런 일이 아닌 것으로 비춰집니다.
이런 과정에 수 많은 좌절과 슬픔이 꼬리를 물고 어느덧 형성 된 계급사회의 구조 속에서 잠간의 여유마저도 사치로 몰아 세우는 첨단의 문명은 더 많은 잉여인간을 생산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얼마전까지 119구조대는 화재를 비롯한 동물, 가정 개인사에 이르는 많은 긴급 요청으로 출동하게 되는데 작업 상황 가운데사망이 발생했을 때 당시 출동 사유가 119 본연의 의무(화재)가 아니면 ㄱ값을 치뤘다는 얘기도 인간성 상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산업혁명 당시 풍자포스터
My Life As A Dog, 라는 영화가 있는데 혹시 이보다 못한 미래가 존재할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 여러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그늘진 경우를 맞이할 때
그럴수록 희망과 사랑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사랑과 희망이 세상을 순간 바꿀 수는 없어도 여기에서 오는 아픔을 덜하게 하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현실을 몸으로 맞딱뜨리지만 머리는 희망을 지향하며 마음으로는 사랑을 느끼는 것이 행복은 아닐런지요?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와 흥정하여 열배 이윤을 남기는 딸 (헨리8세와 메리) (0) | 2013.10.23 |
---|---|
앵무새가 지저기는 두 곳의 맛집 풍경 (0) | 2013.10.22 |
정과 흥이 돋보인 88올림픽 특집, 우리동네 예체능 (0) | 2013.10.14 |
세계불꽃축제, 하늘엔 불꽃 땅바닥엔 시민의식 (0) | 2013.10.10 |
공중전화가 맺어 준 우연을 가장한 인연 (0)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