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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를 바꾼 하나의 작은 배려 (교보의 창립자 대산 신용호)

 

                

 

                                  

 

 

 

 

 

식사 이후 3분 이내에 3분동안 하루에 세번 양치질하는 <333규칙>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절약과 환경에 관한 의미 있고 좋은 취지에서의 여러 캠페인과 운동들이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일까...

필자 역시 자신을 통해서 주변 이웃들이 행복해지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에 열번 선행하기를 규칙으로 정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하리라 맘먹던 첫날...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남에게 선행은 고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작은실수로 큰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잘 아는 선행과 배려, 좋은 의미에서의 크고 작은 실천항목이 있으나 이것을 실천하기란 좀처럼 수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출처,구글, 대산 신용호

일제 강점기 기간에 많은 동포들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혹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게 되었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속속들이 해방의 기쁨을 안고 조국을 찾을 즈음...

소련의 어느 부두도 예외 없이 귀국을 서두르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고 이윽고 조국을 향하는 마지막 배는 항을 떠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한 몸집이 작은 한 사람이 부둣가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제발 자기를 배에 태워달랬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이미 항을 떠난 큼지막한 배가 한사람을 위해 선회하란 쉽지 않을뿐더러 그냥 절규하는 그 사람을 외면하채 갈길을 재촉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그 배의 선원이었던 신용호씨는 선장을 설득하여 부둣가에서 애처롭게 발을 구르던 그 한사람에 태워 안전하게 귀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를 태워달라고 했던 몸집이 작은 사람이 훗날 한국 근대사에 큰 업적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이었으며 이후로 수소문하여 신용호씨를 파악한 박통은 함께 나랏일을 하자고 제안하였지만 신용호씨는 이제 막 시작한 교육보험 사업에만 전념하기를 고집하였고 이는 지금의 교보생명의 모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구글

 

 

 

물론 종로1번가에 교보생명이 우뚝서기까지는 여러모로 주변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교보의 창업자이신 대산 신용호 선생의 이러한 순수한 작은 배려가 한국 근대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일로 전개됨을 보게 됩니다.

 

존중과 배려의 덕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잘 자켜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정치와 종교 사회와 직장 각분야마다 서로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형국에 힐난과 고소, 비아냥거림이 난무하는 우리의 주변을 살피게 되고 아무리 선진국을 표방하고 외적인 경제규모나 소수 대기업의 놀라운 성과를 과시하려고 하지만 뼛속 깊게 자리잡은 집단 이기주의나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된 개인의 날카로운 이성은 위로의 대상이 아닌 염려의 수준에 이른 느낌입니다.

 

 

출처 구글, 교보생명 전경

 

 

일본에서 6년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 온 작은 형은 조카의 학업 때문에 고민에 빠진 모습입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일본 학생들은 매우 순수하고 인간적인데 반해 한국 학생들은 거기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한낱 개인이 객관적으로 이를 쉽게 단정짓거나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경험하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갈등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탓하기 이전에 어쩔수 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더불어 이를 조장하는 사회의 병폐가 존재하더라도 더 나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양해야 할 그리고 지향해야 할 것들을 항상 염두해야 하지 않을까요?

 

커다란 성취와 혜택에 만족하고 조그마한 아쉬움에 좌절하며 슬퍼하기 보단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큼지막한 문제와 장애에 담담히 맞이하는 너그러움과 배려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또 박통에게 보여 주었던 대산 신용호 선생님의 배려 못지 않게 배를 선회하여 회항한 장면이 머릿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원칙이라는 것에 반하여 모두에게 익숙한 습관이라는 기준에 반하여 뱃머리를 부두로 돌린 것처럼

나 자신도 남이 모르는 사이 자신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좇아 회항 없이 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자신를 좀 먹게하고 주위를 슬프게 하는 그러한 자신만이 아는 병폐와 아집을 버림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알량한 <배려>보다 선행되어야 하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