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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공백을 깨고 9집 들고 나온 자우림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흥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각 방송사마다 실시간 증시의 현란한 증폭처럼 흔들리는 시청률에 예의주시 하듯이 영업사원이 그 실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반응이나 혹 포털사이트에 검색되는 자신의 글을 살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포스팅한 글들을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최근 강우석, 오성과 한음, 헨리8세, 마리아노 리베라에 관한 다방면의 주제로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기분좋게 네이버 검색에서 각각 (블로그) 1,1,2,1위에 올라 있음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무쏘의 뿔처럼...다음1)

저는 다음에 포스팅했지만 규모가 큰 네이버에서 이런 현상을 보고 매우 고무적?^ 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외의 최근 포스팅하는 글들이 검색에서 자주 상위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서 계속 이런 작업을 이어가면 어떤 좋은 결과물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혹은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되었죠. 물론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한편으로 기준치에 못미치는 내용 때문에 고심하거나 남들이 형편 없는 글이라 혹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의미에서 분명 질적인 좋은 작업을 기분에 내키기 식의 단발성이 아닌 꾸준히 이어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출처 구글>

 

 

간혹 주변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름을 들먹이는 가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우림>을 좋아한다는 답변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을 듯 싶습니다. 노래를 잘한다는 내용 이면에 자우림에 관한 매력은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제가 유난히 관심있게 봤었던 <나가수>에서도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팔색조에 가까운 변신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끝내 명예졸업을 거두었었고 <민트 락>이라고 일컫는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적 성향은 대중들에게 강하면서도 큰 반감 없이 다가옴을 보게 됩니다.

요전날 라디오를 진행하는 박경림은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이렇게 목소리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라며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소유한 자우림(김윤아)을 평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출처 구글>

데뷔전 홍대앞 블루데빌이라는 클럽에서 mbc 영화제작진과 우연히 만나  'Hey Hey Hey'를 크게 히트시킨 일화 또한 동화 같은 얘기이며

무엇보다 1997년 결성하여 지금껏 네명의 멤버 (기타 이선균,베이스 김진만, 드럼 구태훈, 싱어 김윤아)가 한번의 교체 없이 그룹을 유지해온 것은 그들만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래를 할때면 옆에 누가 서있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으며 또 음악은 리드보컬이 아닌 반주자에 의해 그 음악이 크게 리드당하고 좌우된다는 느낌... 기타 등등의 여러가지의 복잡미묘한 음악적 성향과 개인의 취향이 어우러지는데 이런 시각에서 오랜 시간을 견고히 지탱하는 자우림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 인성이나 팀웍뿐 아니라 그들의 음악적 역량과 색깔은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말 않듣는 어린이의 개구장이 모습으로 떄론 고교생의 청순한 이미지로 비춰지다가 성난 마녀와 같은 두려움의 존재로 돌변하기도 하고 또 관능미 넘치는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발산하기도 합니다. 어떤 금전적 혹은 확고부동한 성공이라는 테마의 굴레에 메이지 않는 그들만의 자유롭고 폭넓은 음악의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대중이 이해 못할 난해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으면 한편으론 음악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질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자우림이 3년의 공백을 깨고 9집 앨범 <goodbye grief>를 들고 나왔는데 외모로는 배우 전도연을 연상시키는 보컬 김윤아는 예전에 자주 선보였던 씩씩하고 당찬 모습이 아닌 현 사회에서 겪는 젊은이들의 좌절과 아픔을 여과없이 그대로 묘사하며 있으며 아파트 평수 / 자동차 배기량 / 은행 잔고...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타이틀곡 <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상실감과 고독이 만연한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어떠한 탈출구도 비책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비정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0억 정도의 인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머지는 잉여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라는 알수 없는 질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요즘 미국에서 혹은 미국내 기업에서 신청자 한에서 이뤄지는 베리칩이 문제라고 하는데 개발자 칼 샌더스 박사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사람의 감정까지 컨트롤하는 기능이 있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혹시 인체에 이식된 이것에 심한 충격이 가해지거나 파손될 경우 베리칩을 구성하는 리튬성분 때문에 심한 헌데(독종)이 생긴다고 합니다.(계16:2)

 

이처럼 성공이라는 거룩한 삶의 목표와 무언가 거대한 장벽에 갖혀 아무런 대꾸나 불평도 용인되질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갖는 미래를 향한 꿈이 거짓이라는 막연한 불안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당돌하리만치 과감하고 당찬 모습과 또는 어떤 굴레에 메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보여주던 자우림이 슬픔과의 이별을 내용으로 들고 나온 9집이 슬픔에서의 탈출이 아닌 슬픔 그 자체를 보여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로 채워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수다에 따뜻한 삶의 온기를 느끼는 듯 하나 요란한 삶 속에서 고독을 느낄 시간조차 없을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단지 거기에서 고달파하는 존재가 자신만이 아닌 자신 옆에 있는 우리 모두의 얘기이기에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필요로 하며

주변에서 규정하는 맹목적인 그리고 허황된 꿈에 관해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