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꿈을 가진 사람에겐 <이별이란 없는거야>
3P movement
2011. 12. 3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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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시간은 다 지나고 이제는 원망도 미움도 슬픔도 모두 의미 없는 한해의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올 한해.... 무척 힘든 일도 있었고 미친 개처럼 날뛰며 쾌재를 울리던 감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지니간 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보다
지난 한해를 쉽사리 보내기 힘든 부담과 아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80년대 역량 있고 참신한 음악인들의 산실이었던 동아기획, 그곳에서 시작한 들국화의 멤버였던 최성원은 독립하면서 <이별이란 없는거야>를 발표합니다.
여기에서 드러난 최성원의 목소리는 들국화에서 각인된 <락>의 거칠것 같은 음색과 달리 미소년 같은 청순함을 보이며 무엇보다 폐부를 가르는 농도 짙은 호소력은 이 노래의 압권이자 아마도 그외 다른 가수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차별성으로 여겨집니다.
이곡은 잔잔한 멜로디 못지 않게 가삿말에도 큰 호소력을 엿볼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그 무엇인가에 대해 놓칠 수 없는 애절함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 존재가 현재 소유할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 성질이기에 더한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한해를 몇시간 남겨두지 않은 시점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
어쩌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시간을 나누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지구의 자연(에너지)이 위아래를 오가는 무한 반복을 보이며 결국 제자리(현재)를 입증하고 또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처럼 현재의 모습과 상황은 예전에 동경했고 잊혀졌던 과거와 동일한 성질,내용일 것입니다. 시간의 연속선상에 놓인 현재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과거의 동경과 후회가 아닌 그렇다고 미래의 막연한 기대는 더더욱 아닐 것 입니다.
언젠가 이뤄지고 완성 될 <사랑>과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을 가리켜 한때의 고단함으로 인해 <실패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언젠가 <사랑>을 성취한 사람은 잠간의 <멀어짐>을 가리켜 가슴 시린 <이별>이라고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다름>과 <틀림>의 문제처럼 <현상>을 가리켜 <현실>로 오인하는 착각을 고수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과거와 현재에도 항상 동일한 자리에서 동행한 누군가가 있을지라도 그 존재에 대한 인격적인 의지와 바램이 소원하다면 언젠가는 동떨어진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이러한 경우가 참으로 가혹한 <이별>일 것입니다.
아무리 현재의 여건이 <사랑>과 <이상>을 성취하기 힘든 처지에 놓였을지라도 언젠가 이뤄질 그것에 대한 희망을 치 않음이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찰턴 해스턴)은 치열한 격전을 치루고 곧 개선문을 통과 할 장수와 함께 있음에도 정신을 잃고 상황판단치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조만간 맞이하게 될 찬란한 영광을 목전에 두고도 한치 앞을 가늠하고 예측 못할 숨가뿐 현대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단지 결과를 떠나서 <이상>을 향한 <의지>를 굽혀선 안되며
답답하고 기나긴 터널의 여정에도 언젠가는 맞을 눈부신 자유에 대한 염원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 민족이다라는 어느 지혜자의 말처럼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장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을 쉽게 단념하고 쿨하게 이별을 고하며 이래서 정년 후 이혼과 성탄 선물의 이혼이 등장하는가 봅니다.
현재의 식상함으로 인내라는 불편함은 꼼수에 능한 지혜자들에겐 어리석음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꿈>을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숙제일 것입니다.
때로는 광야 위의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와 같이
때로는 비바람을 몸소 맞딱뜨리는 <고목>과도 같이 가엾은 자신을 돌아보지만
약자의 꿈을 비웃는 비열한 세상마저도 따뜻이 보듬는 한편의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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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시간은 다 지나고 이제는 원망도 미움도 슬픔도 모두 의미 없는 한해의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올 한해.... 무척 힘든 일도 있었고 미친 개처럼 날뛰며 쾌재를 울리던 감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지니간 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보다
지난 한해를 쉽사리 보내기 힘든 부담과 아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80년대 역량 있고 참신한 음악인들의 산실이었던 동아기획, 그곳에서 시작한 들국화의 멤버였던 최성원은 독립하면서 <이별이란 없는거야>를 발표합니다.
여기에서 드러난 최성원의 목소리는 들국화에서 각인된 <락>의 거칠것 같은 음색과 달리 미소년 같은 청순함을 보이며 무엇보다 폐부를 가르는 농도 짙은 호소력은 이 노래의 압권이자 아마도 그외 다른 가수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차별성으로 여겨집니다.
이곡은 잔잔한 멜로디 못지 않게 가삿말에도 큰 호소력을 엿볼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그 무엇인가에 대해 놓칠 수 없는 애절함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 존재가 현재 소유할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 성질이기에 더한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한해를 몇시간 남겨두지 않은 시점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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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시간을 나누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지구의 자연(에너지)이 위아래를 오가는 무한 반복을 보이며 결국 제자리(현재)를 입증하고 또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처럼 현재의 모습과 상황은 예전에 동경했고 잊혀졌던 과거와 동일한 성질,내용일 것입니다. 시간의 연속선상에 놓인 현재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과거의 동경과 후회가 아닌 그렇다고 미래의 막연한 기대는 더더욱 아닐 것 입니다.
언젠가 이뤄지고 완성 될 <사랑>과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을 가리켜 한때의 고단함으로 인해 <실패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언젠가 <사랑>을 성취한 사람은 잠간의 <멀어짐>을 가리켜 가슴 시린 <이별>이라고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다름>과 <틀림>의 문제처럼 <현상>을 가리켜 <현실>로 오인하는 착각을 고수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과거와 현재에도 항상 동일한 자리에서 동행한 누군가가 있을지라도 그 존재에 대한 인격적인 의지와 바램이 소원하다면 언젠가는 동떨어진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이러한 경우가 참으로 가혹한 <이별>일 것입니다.
아무리 현재의 여건이 <사랑>과 <이상>을 성취하기 힘든 처지에 놓였을지라도 언젠가 이뤄질 그것에 대한 희망을 치 않음이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찰턴 해스턴)은 치열한 격전을 치루고 곧 개선문을 통과 할 장수와 함께 있음에도 정신을 잃고 상황판단치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조만간 맞이하게 될 찬란한 영광을 목전에 두고도 한치 앞을 가늠하고 예측 못할 숨가뿐 현대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단지 결과를 떠나서 <이상>을 향한 <의지>를 굽혀선 안되며
답답하고 기나긴 터널의 여정에도 언젠가는 맞을 눈부신 자유에 대한 염원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 민족이다라는 어느 지혜자의 말처럼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장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을 쉽게 단념하고 쿨하게 이별을 고하며 이래서 정년 후 이혼과 성탄 선물의 이혼이 등장하는가 봅니다.
현재의 식상함으로 인내라는 불편함은 꼼수에 능한 지혜자들에겐 어리석음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꿈>을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숙제일 것입니다.
때로는 광야 위의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와 같이
때로는 비바람을 몸소 맞딱뜨리는 <고목>과도 같이 가엾은 자신을 돌아보지만
약자의 꿈을 비웃는 비열한 세상마저도 따뜻이 보듬는 한편의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roverbs 16:9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