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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귀 논란"으로 붉어진 무대공(경)연의 오해와 진실


( 3P Movement) ........... Putity의 바탕 위에 Passion으로 성공을 이뤄 Peace를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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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의 립스틱 사건(고)을 시작으로 나가수는 많은 이슈를 제조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여러 가수들이 등장하며 국민들을 열광케 하고 반면 개중에는 응원하던 가수의 탈락으로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 나가수에 있어서 부각되는 이슈는 실력파? 발라드 가수의 탈락에 뒤이은 아쉬움과 여운, 여기에서 발생한 "막귀 논란"
"청중평가단의 자질문제"이다.

"나는 가수다"를 가리켜 "나는 성대다"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최근 들어서 등장한 "막귀 논란"의 문제는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가 애매모호한 경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느 식으로 얼버무릴 소지가 아닌듯 하며  일반 정규앨범과 무대공연에서 가져오는 차이점에 관하여 지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점은 무대공(경)연과 정규앨범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무대 위에서의 다양한 변화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또 필연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변화와 노력?에 대해서는 높은 순위를 꾀하려는 꼼수로 비춰지고 감성을 자극하는 순수한? 발라드곡을 선보이는 가수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수준 높은 청중의 정당한 지적이라고도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모순과 큰 함정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면 여러가지의 감정과 경험을 하게 된다. 예로 자신이 노래를 하고 주도적으로 분위기와 공연을 이끈다라기 보다
    오히려 나를 압도하는 어떤 존재에 휩쓸려 자신이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노래를 하는 순간 이 노래를 부르고서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있다.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무대 위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기까지 최선을 다한다는점이고 그만큼 그 무대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무대 위에서 가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리켜 점수를 의식하는 가수의 꼼수로 치부해서는 결코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무대 위의 가수는 부담감과 더불어 커다란 자유로움을 소유한 존재이고 그 자유로움을 맘껏 발산하고 표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왜냐면 그는 현재 정규앨범을 위해서 녹음실에서 작업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대 위의 가수는 먼거리에서 많은 것을 투자하며 공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서 품어 나오는 어떠한 몸동작과 약간의 오버스러움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며 이러한 모습에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뜻하지 않게 무대 위에서 가수의 표현과 행동이 청중에게 거북함?을 줄수조 있도 한편의 경박함으로 보일 수도 있느나 굳이 이렇지 않고 이러한 퍼포먼스가 청중에게 긍정적인 평가로 작용한다면 결코 무대 위에서의 과감한 도전과 표현에 주저 할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 트로트 가수가 갑자기 락커로 변신하다면 상당히 생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기타만 항상 어깨에 두르고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갑자기 기타를 내려 놓고 무대 위에 선다면 이것 또한 어색함이 따르게 된다. 사실 무대 위에서 시선처리와 손(몸)동작 하나하나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소소한 이런 모든 것들이 가수와 무대매너를 평가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우수운 예로 흐리멍텅한 눈매에 턱고인 태연의 인터뷰 모습을 지적할 수도 있다. 무대 밖에서도 이렇게 가수의 태도와 자세에 관하여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데 하물며.....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가수는 이러한 자신만의 부자유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때론 가수들이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남들이 보기에는 어정쩡한 댄스를 유감 없이 선보인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혹자는 자신의 노래에 도취되어서 오버한다고 할수도 있지만 대부분 철저한 계산과 준비. 그리고 자신감과 연륜에서 비롯된 실력임을 인정하게 된다.
문제는.... 자신은 하지 못하면서 남들이 선보이는 최선의 모습을 가리켜 꼼수라든지 점수를 의식한 수작으로 이해하는 성향을 나가수에서 찾아보게 된다. 이러한 추세에 비춰 볼 때 지금이 경연과 나가수를 공정하고 이해하고 평가하는 평정심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나가수에 있어서 순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움의 필요성 느낀다.
예로 순위가 낮은 곡(가수)에 대한 저평가와 아쉬움...
그리고 맹목적으로 순위에 집착하는 경연과 평가는 지양해야 할 듯하다.
만약에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가리켜서 그의 탐탁치 않는 수익과 사회의 반응으로 인하여 대중가수보다 저평가 할 수는 없다.
대중가수도 마찬가지로 그가 주로 섭렵하는 장르의 음악과 심지어 경연의 곡이 순위로 평가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순위 자체의 의미를 무시하는 뜻은 아니지만 한 전문분야(장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가수는 순위를 뛰어넘는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접하면서 오해와 함정에 빠지는 부분도 바로 이러한 성격을 인정하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굳이 내가 응원하는 가수가 하위를 마크하고 행여 탈락한다고 하여서 지나치게 아쉬워 하거나 편협한? 평가단을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규찬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음악은 여전히 탈락 이후에도 공전한다고 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가수나 곡에는 영원한 1등이 없고 무한한 공전과 변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동안 나가수가 많은 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과 함께 최근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국민의 진지한 자세는 반가울 따름이다.
아마도 이러한 작은 변화와 새로움을 향한 과감한 도전이 더 나은 나가수를 기대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나가수와 스포츠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순위가 정해진다는 것이고 차이점이라면 나가수에 있어서 하위 성적이라도 크게 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가수에 참여하는 가수는 순위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가 있고 이미 그는 경연을 통해서 그 어떤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굉장한 선물과 아름다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선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분명 "가수"가 도드라지는 건방진 테마이다.
그 건방진 테마를 바탕으로 한 대단한? 가수들은 "순위"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최고의 환희와 쓰디 쓴 절망을 맛보고 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순위의 순위에 의한 순위를 위한 "나가수" 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순위의 가공할만한 위력에 뒤이은 막귀논란과
청중평가단의 자질문제는 그렇게 생소하거나 이상한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순위로 가늠할 수 없는 가수의 역량과 자질(장르)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최선의 노력과 최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가수를 평가하고 순위를 정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선입견과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분명한 사실은 나가수의 변화와 발전은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전은 이후의 나가수 경연을 설레이며 기다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쪼록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지친 많은 이들이 나가수라는 치열함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